예전에 인권위를 취재 한 일이 있다. 참, 거만하고 꼬장꼬장한 사람들이었다. 솔까말. 기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취재하기 까다로운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얼마 전 알게 됐다. 바로 지난달,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의 사퇴에 이어 손숙 전 환경부 장관 등 정책자문위원과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 등 조정위원 5명,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자유권전문위원 12명과 전문상담위원 14명, 외국인인권전문위원 6명, 장애차별전문위원 3명, 정보인권특별위원회 3명 등 총 61명이다.
그 ‘쫀심’ 강한 인권위원들이, “못해먹겠다”며 사퇴할 정도가 된 인권위는 지금 학생들에게도 우롱당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청소년 대상 인권 에세이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자로 뽑힌 여고생이 "현병철 위원장의 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며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인권위 논란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이다.
여고생 김은총 양은 “내가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인권을 현 위원장이 끝도 없이 추락시키고 있다”며 “인권위는 직접 선정한 수상작들에서 이야기하는 인권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함께 수상받을 예정이었던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도 “인권위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여고생 김은총양이 지적한 대로 현병철 위원장 집권 이후 행보를 보면 그림이 보인다.
2008년 12월, 행정안전부는 인권위에 49% 감축을 요구했다. 그리고 2009년 1월 30% 감축안을, 2009년 3월에는 인권위에 21.2% 조직축소를 통보한다. (인권위 정원은 208명이었다)
이어 2009년 3월, 제10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과 멕시코, 호주, 인도,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아프가니스탄 등 7개국 국가인권기구를 대표하는 알렉시 아사타슈빌리 멕시코 국가인권위 대표에 의해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국제인권위원회가 우려를 표명했는데도 불구, 한국 정부는 국가인권위의 조직을 구조조정하려고 한다. 그것은 인원의 20%를 감축함으로써 한국 국가인권위의 핵심 사업들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 그런 조치들을 강요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효과적인 국가인권기구로서 기능 하는 한국 국가인권위의 능력을 제약할 것”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계속되는 축소 논란 속에 2009년 7월20일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 그의 취임 이후 인권위는 더 많은 논란에 시달려 왔다.
8월, 현병철 위원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안된다는 것이 내 소신”(그동안 인권위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이라고 밝혔다. 앞선 7월 말 현 위원장은 인권간체들의 질의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보수와 진보 양측에서 항의를 샀다. 이 인터뷰에서 현 위원장은 “어떤 충돌 현장에서건 공권력이 정당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까지 문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위 행위를 문제 삼기도 했다.
이어 2009년 8월, 현병철 위원장은 독립기구인지 행정부에 속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법적으로 후자에 속한다”고, 인권위 조직 축소에 대해서는 “다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라며 인권위 축소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같은 해 8월, 아시아인권위원회(AHRC)는 한국 인권위의 등급을 현행 A에서 B로 낮춰야 한다고 ICC에 주문했다.
그리고 8월 말, 국가인권위원회 내부 자문기구로 구성된 북한인권포럼 소속의 한성대 김귀옥 교수와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사퇴 입장서를 냈다.(생각해 보면 최근의 인권위원들 사퇴에 앞선 사퇴 사태이기도 하다)
2009년 9월에는 국제 인권단체가 항의서한을 보내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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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인권위는 사형집행, 보호감호제 부활 등 형벌제도의 재도입에 대해서 의견을 내지 않았다.
지난 4월, 인권위는 법원 판결문과 검찰 수사결과 발표 등을 토대로 야간시위를 폭력성과 연관짓기 어렵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놓고도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내지 않았다.
같은 달 인권위는 박원순 사건과 관련,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내는 것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대해 내부 논의를 벌인 끝에 결국 의견을 표명하지 않기로 했다. 이때 현병철 위원장은 반대 의견 표명.
지난 5월에는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인권위 상임위원들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현 위원장이 거부했다. (특별보고관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국세청 직원의 파면과 정부를 비판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박원순 변호사 사건 등을 염두에 두고 인권위와 인권단체들을 대상으로 면담 조사를 했었다. 이때는 현 위원장이 함께 있었는데, 당시 현 위원장은 박원순 변호사 사건에 대해 법원에서 심리중인 사건이기에 신중히 판단해 의견을 안냈다고 답변했다. 이후 라뤼 측이 현 위원장과의 오찬을 거부하기도)
7월에는 인권위가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기초조사를 벌이고도 본조사를 안 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석 달동안은 인권위 전원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인권위 운영규칙에는 매달 2회 전원위원회를 열게 돼 있다/원 자료는 권영길 의원 정책보고서)
11월 11일에는 전국 621개 인권시민단체들에 의해 사퇴 촉구 설명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1월16일, 현 위원장은 사퇴 요구가 빗발치자 “오로지 인권이라는 기준을 토대로 흔들림 없이 업무를 추진하겠습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내고 퇴진 요구를 거부했다.
이거 말고도 많지만 너무 많아 정리가 어렵다.
최근 국민일보가 재미있는 결과를 내 놓았다. 바로 인권위의 경찰, 검찰, 정부기관 등에 내린 권고 수용율이다. 2007년 인권위의 권고 293건 중 204건이 받아들여졌다. 2008년 인권위는 312건의 권고를 했으며 188건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2009년 249건의 인권위 권고는 133건이 받아들여졌다.
현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체포 과정에서 피의자를 때린 경찰 등에 대한 고발 등 6건, 집회를 하던 장애인을 방패로 내리찍은 전경에 대한 수사 의뢰 등 3건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 등에게 내린 직권조사 권고 3건 역시 수용되지 않았다. 환자를 때린 보호사에 대한 처벌 등 징계 권고는 6건 중 1건만 받아들여졌다. 7월 이후 인권위 권고에 대한 피권고기관의 ‘검토 중’ 답변은 188건(47.5%)에 달했다.
아. 더 설명하고 싶지 않다. 주석도 달기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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