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의 앨범 3집인 ‘슬픔과 분노에 관한’에 실렸던 이 노래를 접한 것은 내가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였다. 원래 소위 ‘질질’ 짜는 분위기의 곡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본인은 이소라의 노래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한 여학생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 바로 이소라 3집 테이프였다.
본인보다 한 살 아래였던 그녀는 같은 과였다. 처음부터 그녀도 본인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성들의 호감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애아빠가 된 지금은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녀는 기억속에서 가장 아픈 연애에 대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이후 다시는 아픈 연애는 다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들 정도였으니.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좋아했는데, 그녀는 결국 나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그녀는 군대에 간 남자친구가 있었고 남자친구가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 그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기다려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래전 일이니 기억이 변색된 부분은 있겠지만 대충의 내용은 그했다) 혈기 넘치고, 또, 나름 곧바른 성격인 본인은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우겼고, 결국 연애 관계로 발전하기 전에 끝났다.
여자와 헤어진 경험이나 채인 경험이 적지 않지만 헤어진 뒤 유일하게 미워했던 적이 있다면 바로 그녀였던 것 같다. 지금도 연애에 대한 이야기 나오면 가끔 하는 이야기가 ‘쓸데 없는 기대를 주는 것은 가장 잔인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당당하느냐고 물으면 그렇지도 않은 일들이 그 뒤에도 한번인가 있었다. 말하자면 ‘상처입고, 상처주는 청춘’이었다.
그런 그녀가 준 유일한 선물이 바로 이 테이프인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이 테이프에서 가장 마음을 잡아 끌었던 노래가 바로 Curse, 우리말로 하면 ‘저주’다. 생각해 보면 모질게 대한 것도 있었으니 날 저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중에 우연히 이 노래를 들으면서 떠올랐다.
20대, 남에게 상처 한번 주지 않고 살았던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또, 그걸 되집어 사과하기 위해 찾아 나서는 것도 우스운 꼴이 될 듯 싶어 지금 다시 그녀를 만나 사과하고 싶지는 않다. 과거는 그냥 과거로 묻는 것이 그나마 아름답게 남을테니 말이다. 만일 그녀가 본인을 저주한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것도 운명이겠다 싶다.
아직 많이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인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번갈아 오는 것임을 가끔 느끼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가슴 아픈 연애에 대한 기억은 분명 그녀의 저주였겠지만 그녀가 나에게 남긴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그녀가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빌 수 있는 내가 될 때가 오길 바란다. 그때쯤 되면 본인도 조금은 더 어른이 돼 있을테니.
사랑을 얘기하고 이제 너무나 가증스럽게 또 이별을 말한 너
흔한 아픔은 지나가고 그 휑한 머릿속엔 지워버릴 날의 기억뿐
우울한 마음과 늘 불안함과 또 포기의 시간들이 네 운명이기를
사랑할때마다 일할때마다 저 파멸로 향한 길이 네 앞을 밝히기를
변한 너에게 길들여진 나로 바꾸려 했어 그때
흔한 아픔은 지나가고 그 휑한 머릿속엔 지워버릴 날의 기억뿐
우울한 마음과 늘 불안함과 또 포기의 시간들이 네 운명이기를
사랑할때마다 일할때마다 저 파멸로 향한 길이 네 앞을 밝히기를
우울한 마음과 늘 불안함과 또 포기와 파멸들이 네 앞이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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