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볼만한 기사를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신뢰도 높은 매체이자 누구에게는 걸레가 되는 한겨레21의 김기태 기자의 기사다.
이 기사를 읽으려면 먼저 르네마그리트라는 작가를 알면 도움이 된다. 아니 몰라도 관계는 없지만 안다면 참 도움이 될 것이다.
1891년11월생인 화가 르네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남긴 벨기에의 화가다. 1920년 중반까지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들은 언뜻 보기에는 현실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세밀한 그림이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저 사진 한 장을 보자. 이 그림은 르네마그리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다.
그림을 보면 담배 파이프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그림 밑에 있는 글귀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프랑스어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조금만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이건 파이프에 가깝게 그려진 그림이지 파이프가 아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제대로 비꼰 기사가 바로 ‘뵈는 게 없다’(읽어보시려면 클릭)라는 기사다.
사실 이 기사는 김기태 기자의 오리지널 착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서 @marrymaryk라는 트위터리안이 패러디를 했다. 패러디 내용을 보면 이렇다.
그러나 김기태 기자는 이 내용을 확장해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파이프를 파이프가 아닌 다른 것으로 해석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물론 앞서 @marrymaryk가 발휘한 재치는 놀라운 것이다)
이 기사에서는 안상수 대표뿐 아니라 숨쉬는 사람을 야구방망이로 패도 되는 물건, 오브제로 만들어 버리는 SK 재벌 이세 최철원을 비꼰다. 그의 비유가 딱 들어 맞는 정점은 ‘사실 2000만원어치도 안 맞았다’는 M&M측의 답변이다. 돈만 주면 때릴 수 있는 물건에게 인권은 필요 없지 않은가.
이 내용은 한겨레21측에 따르면 다른 방송에서는 모두 심각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KBS에서는 9시 뉴스의 끄트머리에 '간추린 단신' 세 개 가운데 하나로 나갔다. KBS에서는 이 내용이 심각하게 보이지 않았나보다. 하긴. KBS에서 보기에 그 사건은 사물, 혹은 오브제에 대한 내용일 뿐 아닌가.
여기서 나는 혼란에 빠진다.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에 한없이 가까운 파이프였다. 그러나 저 재벌 앞에서 나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저 고객일까. 아니면 야구방망이로 맞을 수도 있는 사물일까.
다시 한번 더 묻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사람일까. 아니면 사물, 혹은 오브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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