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카이스트에 연이어 자살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벌써 4번째다. 그러나 과연 카이스트의 운영법이 잘못된 것일까? 근본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간만에 기사가 아닌) 키보드를 두들겨 본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의 원인은 바로 징벌적 수업료가 문제라고 한다. 3명째 자살자가 나왔을 때 카이스트 총장은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7일 4번째 자살자가 나왔다. 그리거 서남표 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차등등록금제도를 없애는 등 대책 마련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자살이 권장되야 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자살자가 나오고서야 사회가 바뀌고 있다면 이는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카이스트의 제도 중 일부, 특히 '경쟁'은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잔인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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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이스트와 의대, 치대 등 졸업 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대학들을 제외한 일반 대학들은 문제가 많다. 이같은 사실은 대학을 꽤 오래전에 졸업한 본인도 그렇지만, 사회인들은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는 학벌주의다. 그러나 정작 대학은 내부로부터 썩어들어가 학점 나눠주기를 하고, 편하게 졸업시켜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3년동안 죽어라 공부만 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에 부합하지 못하면 사회적 패배자가 된다.
단지, 카이스트의 제도는 이같은 고등학교의 룰을 그대로 연장시켜 놓은 것 뿐이다. 무한경쟁은 사실 대학에서 이뤄지는 것이 맞다.
이런 낭만을 원하고 대학에 왔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다. 못믿겠다면 사전을 쳐 보라.
물론 이 경쟁이 ‘컨베이어 벨트 웨에 줄세우고 네모난 틀에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추도록 강요’하는데 있다는 것과 ‘성적별로 차등지급하는 미친 등록금 정책’에 있다는 점도 문제다. 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좌절시키는 ‘입학사정관제’ 역시 문제다. 무한경쟁은 필요하되, 그것이 강요된 교육과 돈, 그리고 그 밖의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학교 교육을 왜곡 시킬 수 있다.
그러나 경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대학이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정재승 교수 트위터)고 말했지만 이는 한때 위로가 될 수 있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교수가 이야기 한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되기 전에 대학이 이뤄야 하는 것은 공부다. 인성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 이전, 머리가 덜 여문 유치원에서부터 초등, 중, 고등학교에서 이뤄졌어야 하는 문제다. 즉, 대학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찾아 온 공간이어야 한다.
그 이전에 입시 공부를 한다면, 대학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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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같은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목숨걸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됐고, 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본인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까지 배워야 한다는 현실에 놀라고 암담해 하는 대한민국의 아빠 중 하나다.
하지만 자살의 책임은 ‘경쟁에서 무릎꿇으면 사람의 희망을 잃어버릴 정도로 인성이 여물지 못한 학생들’을 만들어낸 우리나라의 교육체계에 있다는 것이 본인의 주장이다.
학교가 공부를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고 출세하기 위한, 성공을 위한 공간이 되고, 그것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뿐 만 아니라 이제는 그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취업 잘되는 대학”이라고 라디오 광고를 하도록 하게 된 그 순간. 우리의 교육은 학생들을 자살에 이르도록 스트레스를 주는 ‘구조’가 돼 버렸다.
고등학생때까지 받은 교육이 모두 경쟁에 관계된 것이다 보니 경쟁에서 이겨 나가고, 스스로 결정하는 인성이 갖춰지지 못한 이들이 많다.
다시 정리하자면 대학에서 경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몬 것은 너무 일찍부터 경쟁시키고, 목숨을 걸도록 한 우리나라의 입시교육제도다. 대학에서 인성교육을 하기엔 너무 늦다.
대자보를 게재한 학생들에게 한번 이렇게 묻고 싶다. 잘못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경쟁이 없는 그런 대학이라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아마 그때는 더이상 카이스트가 아니지 않을까. 비록 많은 부분에서 잘못했지만 경쟁은 옳다. 아마 사회에 나오면 그것은 더욱 치열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사회인이 된다면 더욱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대가 엘리트라면 더욱 많은 경쟁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는 한국일보 칼럼에서 “인생의 길 끝에 스스로를 세워두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이런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일부 학생들은 결국 휴학을 고려하기도 하는데, 휴학 역시 학업을 쉰다기보다는 학업에 실패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이런 학생들일수록 실패 경험이 전무했다.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다”고 자살사고를 가진 학생들을 표현했다. 이 세상을 떠난 카이스트 학생들 역시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들은 너무 젊기에, 실패 없는 실패만을 했기에,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사소한 실패와 실수들이 언젠가는 자신들의 신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심 교수가 이 칼럼 끝에 남긴 “궁극적으로 진로 선택의 과정은 결국 자기 확신의 과정일 뿐이다. 그 길에서 살아만 남는다면 인생은 젊고 유능한 당신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으라. 그 무엇으로라도 살아 있으라. 인생은 길고, 학점은 짧다”는 말이 과연 우리나라의 현실에 부합할 수 있을까? 씁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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