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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만료/→연예

조덕환 “전인권 없이 들국화 재결합 없다”

- 솔로 앨범으로 돌아온 전 들국화 기타리스트 전인권 인터뷰

새로운 앨범 ‘고향가는길’을 발매한 전 들국화의 원년 멤버 기타리스트 조덕환을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만났다. 이 앨범은 지난 2월 발매한 ‘Long way Home’에 수록되지 못한 몇 곡을 디지털싱글 형태로 내 놓은 것이지만 들국화의 원년 멤버인 최성원, 주찬권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올드팬들에게는 반가운 선물이다.

참고로 전 앨범은 CD용량의 한계로 13곡 중 2곡이 빠졌다. 이번에 나온 디지털싱글은 전 CD에서 빠진 2곡 ‘고향가는 길’과 ‘Ordinary Man’의 영어버전을 4달만에 디지털 형태로 내놓은 것이다.


1985년 발표된 대한민국 음악사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들국화 1집(원년멤버는 전인권, 최성원, 조덕환, 허성욱 4명이다)에 참여했던 그는 곧 밴드를 탈퇴하고 미국길에 올랐다. 이후 하나의 앨범을 더 발매한 들국화는 곧 해체 됐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와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들국화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로 옮겨갔다.

사실 들국화의 재결합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전인권과 허성욱은 함께 앨범 ‘1979~1987 추억 들국화’를 내 놓기도 했고, 전인권은 다시 재결합을 시도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하지만 1987년 전인권과 허성욱이 대마초 파동에 휘말렸고, 허성욱이 1997년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들국화의 재결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대중들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조덕환은 아직도 들국화의 재결합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보컬 전인권은 2010년 1, 2월경에 만난 뒤 못만나고 있다지만 아직도 회복을 기원하며 오히려 밴드 ‘본조비’처럼 ‘마약퇴치 운동’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재결합 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들국화의 부활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조만간 기적처럼 들국화가 다시 대중 앞에 설 날을 기대해 본다.

오늘의뉴스 : 1집 앨범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1집 발매뒤) 얼마 안있어서 미국으로 갔는데 이유는

조덕환 : 아버님이 보수적(조덕환은 엄격한 공무원 집안에서 자랐다)이셔서 음악을 반대했다. 때마침 지금의 와이프가 미국에서 나와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이민길에 올랐다. 보수적인 배경인 군사정권 때문에 자유롭고 넓은 세계로 나가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민을 했다.

오늘의뉴스 : 미국에서 음악공부를 한건가

조덕환 : 아니다. 가서보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뉴욕 같은 경우 생활비도 많이 들고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익숙해지기 전까지 노동과 직장일을 했다. 그러나 안정되어 가면서 간접적인 경험으로 락 음악을 배웠다. 시간이 날 때 마다 다양한 음악을 직접 보고 들었다.

오늘의뉴스 : 한국과 미국 음악을 비교하면

조덕환 : 한국은 댄스뮤직과 힙합에 치우친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이나 서양은 다양한 장르가 아직도 공존하고 있다. 돈의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졌다. 한국도 인디밴드들이 활성화 돼 있지만 음반시장이 열약해지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다원화된 장르가 같이 공존하는 대중음악의 구조가 형성 됐으면 좋겠다.

오늘의뉴스 : 세시봉, 나가수 등 과거 노래가 인기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덕환 :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시기가 잘 맞았다. 들국화는 다음 세대로 들국화로 나오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싶다.

오늘의뉴스 : 미국에서 나올 때 들국화 맴버들과 연락은 했는지

조덕환 : 처음에 미국에서 나올때 전인권씨가 이미 상태가 안좋다라는 걸 확인하고 나왔다. 마침 2010년이 25주년이라서 같이 재결합을 하길 바랬다. 맴버 허성욱은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오래전에 세상을 떴지만 친구 주찬권, 최성원 등과 재결합 상의를 했다. 전인권씨와 만나기 위해 2010년 1, 2월 삼청동에 찾아가 많은 노력했지만 아직은 전인권씨의 문제로 아직 재결합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래서 전인권이 회복하는 것을 기다리면서, 봄에 솔로음반을 먼저 냈다.

오늘의뉴스 : 솔로음반은 어떻게 하게 됐는가

조덕환 : 과거 동화음반 사장을 만났지만 음반시장이 어려워 손대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인디밴드를 많이 취급하고 있는 루비살롱레코드와 만나 작년 3월에 계약을 했고 5월 달부터 음반이 진행돼 리메이크 앨범이 나오게 됐다.

오늘의뉴스 : 한국의 인디밴드 음악들 어떤지

조덕환 : 굉장히 다원화 된 것 같다. 색깔이 전체적으로 서양적이다. 여러 장르가 모던락, 얼터너티브 락 등 여러 장르가 감각만 모던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인디밴드는 다양한 장르로 형성이 되어 있다. 특히 인터넷 문화가 발달되면서 독학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과거 LP를 복사하던 시절과 달리 유투브 등을 통해서 어떻게 치는 지까지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또, 많은 싱어송 라이터 들이 있지만 단지 댄스뮤직이나 힙합 등은 몇 명의 작곡가 등이 만든 음악만을 하고 있지만, 싱어송라이터인 인디밴드들은 진짜 뮤지션이다.

오늘의뉴스 : 들국화가 다시 들어와도 시장의 협소함 때문에 힘들지 않을지

조덕환 : 일단 시대적 상황이 열악하지만 과거 우리 시대가 남긴 에너지가 대단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앨범이나 대도시 공연이나 투어를 한다면 상당한 호응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오늘의뉴스 : 들국화가 재결합에 성공한다면 공연위주로 나갈 것인가

조덕환 : 서양이라면 아무리 오래 있다 나와도 앨범을 한 장 내고 투어를 하는게 일반적인 예다. 그러나 그것이 늦어진다면 공연을 한번 하면서 음반을 준비해도 되겠다. 음반시장이 열약하기 때문에 공연을 먼저 하고 앨범을 낼 수도 있다.

오늘의뉴스 : 전인권의 합류가 힘든데 전인권이 없는 들국화는 어떤지

조덕환 : 일단 반대한다. 전인권이 다시 컴백해야 진정한 들국화다. 전인권의 색깔이 너무 강력해 정인권이 없는 들국화는 어렵다. 나 자신도 반대하지만 대중들도 시각적이나 청각적으로 만족을 못할 것 같다.

오늘의뉴스 : 들국화 리메이크 앨범도 나왔다. 후배들을 평가한다면

조덕환 : 9개 곡 모두 자랑은 아니지만 대중들이 듣기에 좋으며, 능력 있는 밴드들이 편곡해서 무드있는 음악이다. 2000년에도 트리뷰트 음악이 나왔다. 그때 만해도 20만장이 팔렸지만 지금과 비교를 하면 2011년 앨범이 훨씬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2000년 당시 (이전에 나왔던 리메이크 앨범) 편곡을 할 때는 평범한 대중 발라드나 락적인 뮤지션이 했다면 지금의 2011년 리메이크는 훨씬

진보돼 있다고 느낀다. 만약 지금 음반이 그 시대에 나왔더라면 더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오늘의뉴스 : 들국화의 새로운 맴버를 들인다는 생각은 없는지

조덕환 : 없다

오늘의뉴스 : 전인권의 근황이 궁금하다

조덕환 : 2010년 1, 2월경에 만나고 지금 못만나고 있다. 그 이후로는 연락이 안되고 있다. 언젠가 나타나겠지만 지금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들국화의 부활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오늘의뉴스 : 전인권에게 한마디 한다면

조덕환 : 전에 만났을 때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전인권이) 마약이라는 것 때문에 교도소에 들어갔던 것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뉴저지의 본조비라는 밴드가 25년만에 재결합을 했는데 이 밴드가 상징적인 슬로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청소년들의 마약퇴치 운동에 선구적인 모델이다. 너도 거기에서 회복되서 본조비처럼 어떤 메시지를 표현하면서 재결합한다면 너는 영웅이 될 수 있다”라고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오늘의뉴스 : 대중들이 전인권에 대한 반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덕환 :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판단력이 상실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뉴스 : 주변에서 들국화 관련해서 많이 궁금해 하지 않나?

조덕환 : 인터뷰는 사실 꽤 많이 했다. 한국에 돌아온 것에 대해 물어보고, 한곳에서는 들국화 재결합에 대해 물어봤다.

오늘의뉴스 : 어떤 마음으로 이번에 발매한 개인 앨범 작업을 했는지?

조덕환 : 곡들 중에서 사실 13곡이 미국에서 만든 곡이 몇 곡 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에서 2달만에 2곡을 썼다. 한국에 와서 옛 생각을 하다보니 허성욱에 대한 기억이 나서 그와 관련된 노래를 만들었다. 어린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락앤롤 피아노를 잘치던지... 그 친구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첫 번째 9분30초 노래(앞서 발매된 앨범 ‘Long way Home’에 실린 곡 ‘제한된 시간 속에서 영원의 시간 속으로’) 대중들이 조금 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나 어릴때부터 장례식까지의 나열을 하다 보니 프로그레시브락 적인 형태가 나왔다.

오늘의뉴스 : 앨범 준비하는데 기간을 얼마나 걸렸는지?

조덕환 : 2010년 5월 달에 연습을 하고 주찬권 씨가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에서 연습을 하고 레코딩에 들어갔다. 그러나 무릎사고로 2달이 미뤄지며 자켓 디자인과 관련해서 기획사와 문제도 있었고, 연말에는 음반사가 모두 바빠서 2011년 1월달에 나오게 됐다.

오늘의뉴스 : 마지막으로, 과거 들국화 1집 앨범 자켓 디자인이 비틀즈와 비슷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실제로는 어떤가.

조덕환 :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실, 락 밴드 중에 4얼굴 들어간 앨범들이 많이 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비틀즈 음반을 카피한 것이 아니고 밴드 맴버가 4명이다 보니 그런 경우가 많다. 또 들국화 이름과 관련해서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데 과거 껌 이름들을 보면 꽃 이름을 따온 것들이 많이 있는 데 다방에 앉아 있는데 최성원이 “‘들국화’가 어떠냐”고 해서 지어졌다. 우연히 지어진거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 만든 건 아니다. 야생화라는 표현이 락적인 필링에 맞아 잘지어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