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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만료/→대충 뉘우스

누구든, 언제든 '일반인'에서 '의료사고당사자'가 될 수 있다

#0. 본인은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편도, 환자편도 아님을 미리 알린다.

물론 의사가 아니기에 환자 입장에서 볼 수도 있지만 기자편에서 절대로 어느 한쪽편을 들지는 않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1. 의료사고는 '일반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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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인이 의료사고를 당하게면 그다음부터는 바로 '일반인'이 아니게 된다.
본인은 얼마전에 첫 아이를 봤다.

그러나 첫 아이를 얻은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갑자기 담당의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뭔가 잘못됐구나!'

의료사고를 여러번 취재한 본인의 경험상 의사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는 직감적으로 '잘못된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본인은 진료실에 들어가는데 다리가 떨려옴을 어쩔 수 없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택했던 것을 순간적으로 후회도 해보고 -내가 하는 것도 아니면서- 설마 아니겠지 라는 생각도 들고...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그순간. 의사는 우리 안사람의 뱃속을 보여주면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주었다.

수술장면이나 피냄새를 의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미 경험해 봤지만 그 순간만큼은 웬지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의사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상황이고 이에 대해 어떻게 처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머리속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고 수술실을 나와서야 어떤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순간 의료사고피해자들이 어떤 심정이라는 것을 조금은 느껴 본 것 같았다.

이제까지 쉽게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일단 '진료기록부'를 확보하셔야 할 겁니다"라고 이야기 했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고 산모는 멀쩡히- 까지는 아니지만 걸어다닐 정도로 회복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같은 일이 있은 뒤 취재원인 의료사고전문변호사와 통화 했을 때 그분 역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의료사고를 많이 접한 이들은 모두 본인처럼 '일반인'에서 '의료사고 피해자'로 전락하는 순간을 경험해 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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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이 세간에 화재를 일으켰다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 드는 분위기다.

덕분에 이제 의료사고라고 하면 적지 않은 이들이 "나도 들어본 적 있어"라고 이야기 한다.

그때문인지 의료사고 어쩌구 이야기 하면 무조건 의사를 '나쁜 놈'으로 몰아붙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나름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는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의료사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역시도 기자 입장을 벗어나 의료사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면 개념적인 정의 이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실제로 관련 취재를 하면서 피해자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자잘한 조언이나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입장이 거의 전부다.

그렇지만 그렇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로부터 간혹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당사자가 아무리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해도 주변에서 들어주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고를 당하고 경찰서에 가면 "문제삼아 봤자 얻는것도 별로 없고, 승소 가능성도 별로 없으니 그냥 적당히 합의 보세요"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심한 경우는 병원에서 "4~5년 동안 고생하고 싶으면 걸어라, 걸어봤자 그쪽 손해일 거다"라는 말까지 듣는다고 한다.

이런 경우 피해자 입장에서는 황당함을 넘어 의사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갖게 된다.

물론 모든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선한 쪽이고, 의사들이 나쁜 쪽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부로 의료사고를 내려는 의사도 있을리 없고(있다면 그건 이미 의료사고가 아닌 의료범죄의 영역이겠지) 일단 최선을 다했으면 법적으로도 의사는 무죄라 할만큼 어쩔수 없는 상황은 누구든 인정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돕기 위한 방법은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한나라당의 모 의원은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사고 이제 대부분 환자가 승소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라고 공식성상에서 당당하게 이야기 하더만... 실제 의료사고 현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피해자가 없느냐고 물으면 그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다만 과거에 비해서 억울한 사례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3. 이제 의사 입장을 한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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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입장에서 분명히 의료사고를 일부러 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고를 내서 얻는 이득이 없듯이, 사고를 텅해 의사에게 득이 될 일은 전혀 없다.

따라서 의사들은 의료사고를 낼 수 있는 과는 가능하면 피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런 사고의 위험이 큰 과가 대부분 생명이 직결된 과라는 것이다. 사실 사고가 크게 나는 과가 바로 생명에 직결되는 과라는 점은 당연하다.

이에 더해 생명에 직결되는 과다 보니 생명에 직결되는 시술은 필수적인 면이 있다보니 보험이 적용되는 과가 많다. 그러다보니 해당 과는 "의료사고 위험이 크고, 돈도 안벌리는"과가 되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이 이런 과다.

결국 의사들을 조이면 환자들은 정말 필요한 의사들의 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의사들도 있다. 본인과 친한 몇몇 의사들은 "정말 하루에도 몇번씩 메스를 내던지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산부인과 의사들의 경우 아이받는 것을 포기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고있다.

반면 성형외과에서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이 적다는 점은 결국 생명과 직결되지않은 과가(물론 성형외과에도 생명과 직결되는 시술이 없지는 않지만) 비보험으로 돈도 잘멀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불공평한 현실을 비춰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사고를 냈다고 해서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본인은 사실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도, 의사들에게도 절대로 '당신이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지 못한다.

의사는 하나의 직업이기에 앞서 생명을 다루는 -아닌 이도 있지만- 직책이다. 그렇기에 의사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적지않다. 그러나 그런 의사가 직업을 포기한다고 할 때는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결국 직업과 과의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누가 의사들에게 "나는 잘못한 것 없다"며 돌을 던지겠는가.

#4. 어차피 이번 국회에서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이 통과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별로 없다. 일단 한나라당이 의료사고피해구제법에 반기를 들었고, 의료계의 반대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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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의료사고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의사와 환자들이다. 이들은 법안의 부재로 인해 앞으로도 계속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당장 내일 의료사고피해자가 될수 있는 상황에서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은 어떤 식으로가 아니라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론 입증책임전환제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기자의 이름으로 거부하겠다. 누가 옳다고 누가 감히 쉽게 이야기 하겠는가.-

물론 성급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좋은 방향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는 복지부나 무조건적인 반대론자나 찬성론자들은 한번쯤 법의 필요성을 한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